이 엑소는 다른 많은 엑소들과 마찬가지로 유로파에서 발견되었다. 다른 점이라 하면, 주변에 망가진 다른 개체가 없다는 것 정도겠다. 격식을 최소한으로 차린 복장에 여기저기 동그랗게 그을린 흰 가운을 입었고, 신체는 탄환과 에너지로 파손된 엑소. 그는 고립된 공간에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 몇 개에는 아직도 문자열과 그래프가 떠다녔다. 부품 같은 물건이 올려진 선반이 두어 개에, 벽면은 어떤 설비로 가득 채워진 방이었다. 공간은 아주 어둡게 유지되고 있었다. 방치된 지 아주 오래된 공간에서만 느껴지는 적막이 흘렀다.
고스트는 그 가운데에서 빛을 보았다. 글로리아-3. 수호자가 되기에 적합했으며, 워록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그리고 엑소가 일어났다. 잠에서 깨어나듯, 편안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일어난 엑소가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입이 움직이는 대신, 단어 하나마다 얼굴 안쪽의 일부가 밝은 분홍색으로 빛났다.
“당신은 수호자예요. 여행자의…”
“아… 너는 누구지?”
엑소의 기능을 확인한 고스트가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수호자라는 이름 아래 다시 깨어난 자의 질문이 그를 막아섰다. 고스트는 예상했다는듯 말했다.
“저는 고스트라고 해요. 여행자로부터 창조되었고, 여행자와 인류를 지키기 위한 수호자로 당신을 찾아냈죠.”
“그래, 고스트. 그렇다면… 나는 누구야? 수호자라는 얘기 말고, 나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지.”
그가 뒤늦게 혼란스러워했다. 어쩌면 변덕이 심한 것일지도 몰랐다.
“우선 당신이 한 번 죽었었다는 이야기부터 할게요, 글로리아-3. 저는 그런 당신을 되살린 거예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전의 기억은 모두 사라져요. 하지만…”
사실 수호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은 과거를 모르는 편이 나았다. 괜히 이전의 원수, 또는 그 후손을 찾아간다거나, 끝내지 못한 일이 있다며 주어진 사명을 뒷전으로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공을 떠다니는 작은 지성체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을 이었다.
“여기 어딘가에 당신이 남긴 물건이 있을지도 몰라요. 과거의 당신이 남겨둔 거요.”
고스트가 먼저 움직였다. 긴 세월을 뚫고서도 작동하는 장비들을 스캔해 정보를 확인했다. 반대로 엑소는 사물들을 살폈다. 이 엑소는 혼자였고, 주변이 버려진 지 한참은 되어보였음에도 큰 파손은 없었다. 따라서 관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벡스와 싸우다 죽은 개체는 아니리라고, 고스트는 추측했다. 일방적으로 사격당했다면 모를까.
기나긴 시간 후 엑소가 작게 탄성을 냈다. 그는 구석진 곳의 단말기 앞에 서 있었다.
“뭐라도 발견했나요?”
재빨리 날아오는 고스트 앞에, 그가 들어보인 것은 일종의 신분증이었다. 클로비스 브레이의 직원임을 증명하는 물건에는 방금 깨어난 엑소의 이름과 사진이 선명했다.
“이건… 당신이군요. 글로리아 아이네가 당신의 본래 이름이었어요.”
그렇다면 이 엑소는 황금기에 죽은 인물이다. 그가 이전에 알던 사람들 또한 대부분 죽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수호자가 과거를 조금이나마 알아낸 일은 행운이었다. 어쩌면 불운일지도. 매끈한 흰색 의체를 이리저리 돌리는 고스트를 뒤로 하고, 글로리아-3는 한참 동안 말없이 자신의 신분증을 들여다봤다. 텅 빈 무덤을 파헤치는 일이나 마찬가지일 텐데도 꽤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보다 못한 고스트가 말을 걸러 다가가자, 단단한 손길이 그를 눌러 잡았다.
“나는 내 과거를 알아야겠어. 완전하게. 협조해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