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활성화. 글로리아-3, 어서 와라.”
클로비스 브레이가 파란 머리의 엑소를 보고 말했다.
“이제는 헤베예요.”
“아, 그새 식별자도 바꾸었군? 이런 사례가 처음은 아니지.”
대신 대꾸해주는 고스트―아니케토스― 덕에 헤베는 말 한 마디를 줄였다.
“이 작은 친구가 저를 살려냈으니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려고요. 오랜만에 뵙네요, 브레이 박사님. 유로파에 재앙이 찾아온 때 이후로 처음이군요.”
헤베가 손짓하자 아니케토스가 손 위로 날아왔다. 반쯤 열린 원통형 의체에는 ‘clovis bray08’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본래는 글로리아가 쓰던 소형 드론 껍데기였던 물건이다.
“그래. 돌아온 걸 환영한다. 다시 보니 좋군. 벡스 때문에 잃게 되어 어찌나 안타까웠던지 아나?”
안타깝다는 말은 꽤나 진심으로 들렸다. 접근이 가능한 모든 기억을 되찾은 헤베는 클로비스의 인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유로파의 상태를 통해 추측하자면, 특히 자신이 깨어난 시설이 위협 속에 있었음을 생각하면 구출되지 못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혹은 클로비스가 늘 그렇듯 우선순위를 뒤로 미뤘을 뿐이었겠지만.
“그런데 아이네 박사,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은 따로 요청하지 않았던데.”
“감각중추 복원에 쓸만한 단편을 찾았거든요.”
다시 깨어난 순간부터 쥐고 있었던 물건 이야기다. 기계적인 방식으로 암호화된 구식 데이터 저장기에는 글로리아 아이네가 주기적으로 남긴 음성, 텍스트 기록이 가득했다. 그는 원래부터 무언가를 남기는 행위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일정 나이 이전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그 이전에나 만난 인간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이미 죽었을 것이므로 지금 신경쓸 이유 또한 없었다. 게다가 시시콜콜한 사항까지 알게 되었다가는 아니케토스의 말대로, 과거에 집착하게 될 지도 몰랐다.
“요즘 세상은 어떤지나 알려주시겠어요?”
“유로파에는 벡스 말고도 몰락자라는 놈들이 설치고 있지. 눈과 팔이 네 개 달린 녀석들이다.”
이미 아는 사실이다. 헤베는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그렇다면 지구와 화성은 어떻죠?”
“훨씬 심각하다. 온갖 외계 종족이 날뛰고, 화성을 포함한 식민지를 모조리 잃었지. 인간은 그것들로부터 작디 작은 보금자리나 겨우 지키는 실정이더군.”
“그리고 그게 바로 수호자의 역할이에요, 헤베. 적어도 사람들이 밤마다 편히 잠들 수 있게 해주는 거죠.”
아니케토스가 재빨리 떠오르며 끼어들었다. 시선은 자신의 수호자만을 향한 채로.
“잊은 건 아니죠? 우리는 최후의 도시로 가야 해요.”